2009.03.10 – 700번째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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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써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두고 선택을 해야 할 때

나는 주저없이 애니메이션을 선택했다.

미술학원에서 혼자서 스토리보드를 독학 할 땐
애니메이션 ‘인랑’의 스토리보드를 보았다.

스토리보드라는 것의 연출방법에 있어서
Pan up, pan down 등의 카메라 샷들,
S/A등 생략해서 그려도 되는 부분,
캐릭터들의 움직임을 나타낸 동선 등등..

흔히보는 출판만화에서는 결코 접할 수 없을 뿐더러
애니메이션의 전체 흐름과 나아가
스토리보드 아티스트의 노력 그 자체가 느껴지는
그런 충격을 나는 그 책에서 얻을 수 있었다.



결국 애니메이션을 전공으로한 대학교에 왔다.

소위 말하는 캠퍼스 라이프라는 것을 꿈꿨던 대학 생활이었지만
내 기대와는 결코 다른 현실을 맞이했고,
입시기간에 가봤던 모대학교 애니메이션 작화실을 생각했던 나는,
애니메이션 디스크 조차 없는 이런 학교를 떠나고 싶었다.

부모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전액장학금을 마다한체 1학기만에 휴학을 했다.

좀 더 좋은 학교,
좀 더 열심히 할려는 학생들이 있는 곳.
나는 그런 곳에 몸 담고 싶었다.

다시 다닌 미술학원.
다시 치르려고 했던 입시.
수능도 다시쳤고, 실기시험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곤 어쩐지 자신감도 없어져버렸다.

내가 다시 시험을 쳐서 딴 학교에 제대로 갈 수 있을까?
만약 새로운 곳에 가서도 실망하면 어쩌지?

어쩌면 처음부터 자신감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자퇴가 아닌 휴학을 택했던 그 시점에서 부터 말이다.


다시 돌아온 대학교.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을 가지고 왔다.

처음 대학에 들어올 때 어떤 친구 하나가 내게 해준 말이 있다.
내가 ‘신생 학과라 아직 잘 될지 모르겠어’ 라고 하자
그 친구는 ‘니가 일으키면 되지’ 라고 해주었다.

그 말을 실현하고 싶었다.
정말 내가 뭔가 하나 터트리고 싶었다.

그런 찰나에, 류수환교수님을 만났다.

지금 생각에 내 생애 나 스스로 정말 잘했다고 생각드는 행동은
직접 그 교수님을 찾아뵌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류수환 교수님의 리더쉽에 이끌려
나는 방학이라 텅텅 비어진 과방에서
달랑 하나 있는 디스크에 불을 켰다 껐다 해가며
가끔은 맥주캔 하나 들고 밤을 지세우게 되었다.

처음으로 작화지를 만져보고
라이트블루를 쥐어보고
누드연필를 깎아봤던 순간이었다.

나는 그렇게 그렇게 애니메이션이라는 정글속에 한걸음을 내딛었다.

정말 그 때 그 순간만큼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린 캐릭터가 움직이는 걸 처음 봤을 때.
그 조그만 연필가루로 이루어진 형태들이
내 눈앞에서 살아서 꿈틀거리는 모습이
마치 내 새끼 보는 것마냥 신기하고 감동적이었다.

애니메이션이라는게 이런 재미구나.
나는 그때야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애니메이션을 즐긴다는 것의 의미를.


그리고 한 동안은 정말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학과도 쑥쑥 성장해가고
학생들의 손에서 훌륭한 작품들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2005년.2006년.
결코 잊을 수 없는 넘버링이 될 것이다.

교수님께서 늘 하시던 ‘내가 하면 다 돼!’ 라는 말을
나도 따라 읊어가며 어찌보면 다소 건방져 보일 수도 있는 자신감을 내세워
우리과를, 내 애니메이션을 발전시킬려고 노력했다.

처음만든 내 작품이 도록에도 실리고, 극장의 넓은 스크린에도 상영되던 모습.
감독이라는 목걸이를 달고 그걸 지켜보던 나.
일부러 시간을 쪼개어 내 작품을 봐준 이름모를 사람들.

작품 만들면서 재밌지만 힘들었었던 시간들을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그런 최고의 한해를 보내었지만,
사람이란게 배가 불러지면 나태해 지는 것일까.
무언가 초심을 잃어가는 내 모습이 어느순간 느껴지기 시작했었다.
그것도 고작 작품 하나만들어 놓고..

그 다음 작품을 진행해야 하는데
도무지 연필이 손에 잡히지가 않는 것이다.
하기 싫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해야되는데, 해야되는데 하는 말만 지껄이고
정작 손은 연필보다 키보드에,
지우개보다 조이스틱을 쥐는 시간이 길어졌다.

겉으로만 열심히 하는 척. 있는 척. 아는 척. 잘난 척.
애니메이팅이 잘 안되서 분통 터트리던 무식한 하종민은 온데간데 없어졌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스스로 밥을 차려서 먹어도 모자를 판에
누가 떠먹여 주기까지 바랬던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정말 비겁했다.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3류 언변가였다.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셨던
그 교수님과도 왠지 멀어지는 느낌이었고,
함께 땀 흘렸던 친구들과도 이전과는 달라보였다.


‘지금의 너는 아니야’

어떤이가 해줬던 이 한마디가 그토록 가슴 아팠던 이유도
어쩌면 나도 알고 있지만 부디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확인시켜주어서 였던 것 같다.


이러한 제 2. 혹은 제 3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나는 다시 교수님과 친구들과 애니메이션 작업을 했다.

역시 잊을 수 없는 카시오페하.
처음으로 친구들과 결성한 스토리보드 팀.
팀웍이라는게 이런걸까. 하고 느낄 수 있었던 좋은 계기였다.

다시 뭔가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너무 뿌듯했다.
왠지 이전의 그 초심으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었고,
다시 맞는 행복함이었다.


지금은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반달’에 속해있다.
물론. 그 교수님, 그 친구들+@와 여전히 함께다.

스스로 망하고 있다. 라고 크게 느꼈던 적이 있는 만큼
이제는,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애니메이팅이 잘 안되서 머리 쥐어뜯고
씨발씨발 거리던 내 자신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

나는 류수환 교수님의 제자이자.
스튜디오 반달의 창단 맴버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이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역사가 된다.

남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애니메이터가 되겠다.








– 2009.3.10 –
bY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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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Responses

  1. 김진철 댓글:

    일어나는구나라고 할랬더니…벌써일어났구나. 화이팅~

  2. 아름 댓글:

    멋진 마음가짐이군…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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